독서

[책후기] 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마쓰다 아오코)

김민둉 2022. 8. 9. 17:53

사회에서 일반화는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성범죄 가해자의 비율이 남성이 높고,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는 새벽 골목길에서 주로 일어난다고 하면 새벽 골목길에 혼자 다니는 남성을 조심해야 한다. 물론 새벽 골목길에 혼자 다니는 남성이 무조건 성범죄자는 아니다. 하지만 대낮 큰길에 다니는 여성과 새벽 골목길에 다니는 남성을 조사했을 때, 누가 성범죄율이 높을까? 이런 사회적 사례들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사례들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나는 머리 길이가 짧은 여성이다. 요즘엔 마스크도 써서 모르는 사람이 내 성별을 알아보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머리가 길고, 남성은 머리가 짧기 때문이다. 식당이나 백화점에서 화장실을 사용하게 되면 10번 중 7번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7번 중 3번 정도는 여기가 여자화장실이라는 설명을 듣는다. 그 3번 중 2번은 깜짝 놀란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소리를 친 적도 없고, 서운하지도 않다. 남성이 여성 화장실에 들어와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성범죄를 일으켰다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를 많이 접한 사람은 당연히 머리 짧은 사람이 여성 화장실에 들어왔다면 놀라거나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어찌 생각하면 흔히 말하는 "잠재적 범죄자"로 오해를 받은 것이다. 오해를 받아서 화가 나지는 않지만, 오해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에 대해 화가 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편적으로 겪는 불이익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말고, 그런 불이익의 해결 방안에 대해 생각하자는 것이다. 내가 화장실에서 잠재적 범죄자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남성들이 여성 화장실에서 범죄를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 또한 여성들도 직장에서 보건휴가 부정사용으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여성들이 부정하게 보건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이렇게 쉬운 일을 잘잘못을 따져가며 성별 문제로 만드는 것이 속상하고 답답하다. 일반적이지 않은 다름에 대해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되는 일인데 어렵게 돌아가는 것 같다.

책은 일본에서 벌어지는 여성차별과 성상품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등장인물이 상당히 많이 나오고, 인물간의 유기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라 서로의 이야기를 연결하기가 힘들었다. 작가가 정확히 뭘 말하고 싶은지 난해했다. 일본 여자가 이렇게 힘들다, 우리는 차별받고 있다 라는 상황을 전달하기에 급급한 것 같았다.

성 상품화에 관련해 "아저씨" 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이 인상깊었다. 아저씨라는 단어가 단순히 남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아저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저씨적인 행동이 정확히 뭔지 짚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서는 단순히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는 모습만 나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남성을 대상화 하는 부분도 노출시켜주면 좋았을 것 같다. 여성을 성상품으로 여기는 사례가 더 많지만, 그렇다고 남성을 성상품으로 여기는 것이 묵인될 사항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돌의 상품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이 그 아이돌의 인권을 침해할만큼의 영향력이 있을까? 얼마 전에 이슈가 되었던 알페스 사건이 같은 맥락이다.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 나를 상상하며 성인 소설을 써서 인터넷에 배포했다면 바로 고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아이돌은 본인의 성을 상품화하는 성향이 강하다.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성인 소설도 문제지만, 아이돌을 상품화 시킨 사람들도 문제이다. 이는 성범죄 행위라고 판단되며, 유튜브나 개인방송을 하는 사람들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 또한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성상품화와 관련되어 교복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고,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미친 아저씨들이 갖고 있는 판타지가 대중화 되어 표현된다는 것은 공감했다. 왜 가슴과 골반은 크고 허리는 얇게 그릴까? 그렇게 생긴 사람은 없다. 그런 기괴한 모습을 계속 노출시켜 사람들의 판타지를 쌓게 하는 악순환이다. 교복 말고도 간호사복이나 승무원복 등이 함께 연상되었다. 성인 쇼핑몰에서 코스프레 의상으로 간호사복을 파는 것만 봐도 이런 미친 판타지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간호사복을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미디어로 특정 직군을 상품화시켜 노출한 것이 영향을 줬으리라 추측한다. 반대로 작가가 교복을 상품화하려고 입힌다는 이야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복을 입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그 중 성과 관련된 이유는 없다. 교복이 문제가 아니라 교복을 바라보는 아저씨의 시선이 문제이다. 이런 시선을 바꾸기 위해 교복을 없앤다는 것은 밤에 짧은 치마를 입고 다녀서 성폭행 당했다는 말과 다를게 없다.

육체는 없어지고 영혼만 남으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결말이었다. 결국 육체가 있는 한 성상품화와 성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공감이 되었다. 나는 유토피아를 추구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사람들이 바뀌어도 범죄는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유토피아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작가의 유토피아는 영혼만 남아있는 사회인 것 같다.

차별은 상대적인 것이다. 내가 당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당한다. 어쩌면 내가 당하는 사실도 모른 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통은 피해자만이 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면 박혀 있는 돌을 파내야 하지, 돌부리 옆에 구급상자를 두면 안 되는 것이다. 요즘 인스타그램 댓글만 봐도 "페미" 라는 단어를 욕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 페미니스트들이 올바른 행보를 해야겠지만, 눈앞에 보이는 차별을 무시한 채 절대적인 평등만 쫓는 행동도 사라져야 할 것이다.

 


평점 : 3
생각했던 스토리가 아니었고 어투가 과해서 보기 불편했다. 하지만 생각할 거리는 많이 주었다.

한줄평 : 여자들의 상품성에 대한 이야기었지만, 특별한 해결책 없는 책

 

 


독서토론 당시 책에 특별한 해결책이 없어 아쉬웠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한 분이 해결책이 없어도 차별적인 상황들을 쓰고 공유하고 모두가 문제의식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다. 

상황을 공유하는 글은 모두의 관점에서 작성되거나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결책 없는 본인 생각만 나열된 글은 생각해볼거리는 충분하나, 자칫하다가 저자의 편향된 생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특별한 근거가 없었다. 당연히 소설이니까 수치 자료도 없었고, 상품화에 관련된 내용치고 남자 서술자가 한 명도 없었다. 어찌 생각해보면 남자 주인공만 있는 정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성 편향이 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여성의 입장을 알리는 글로 충분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글에 나를 대입시키면서 읽는데, 내가 가진 가치관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책을 상당히 비판적인 태도로 읽었다. 나도 편견이 가득했던 셈이다. 내 의견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고, 내용이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분의 말을 듣고 반성하게 되었다. 책은 소설이었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다. 내가 겪지 않았다고 넘기지 않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실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야 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