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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후기]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 (김준) 본문

독서

[책후기]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 (김준)

김민둉 2022. 8. 9. 14:15

생산적인 사람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얼마 전에 언니랑 오타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캐릭터가 내 전부인 것 처럼 좋아하고 춤을 따라 추는 모습을 보면서 뭉클했다. 춤추는 영상 댓글에 "나도 저 사람들처럼 좋아하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적어놓은 것을 봤다.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덕질" 할 수 있는 건 축복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만큼 강한 힘은 없다. 좋아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만이 다른 것도 좋아할 수 있다. 작가도 과학 덕후다. 만화책을 보거나, 여행갔을 때, 과일을 먹을 때.. 일상적인 행동에서 과학을 떠올렸다. 본인의 연구와 일상의 모든 것을 연결시키며 재미를 느꼈다.


그런 작가의 덕후같은 행동에서 내가 어떻게 업무를 하고 연구를 해야 하는지 느꼈다. 대학생 때 연구실에 다녔다. 학부생이라 낮에는 시간이 없어서 일과 시간이 끝나는 6시 무렵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출근 시간이 늦으니 자연히 퇴근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와 친구들은 그런 행동을 노예짓이라 말했고, 남들 다 노는 시간에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코딩이나 한다며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생각해보니,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를 알았다. 나는 코딩 덕후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하는 연구에 대한 덕후가 아니었다. 좁고 얕은 식견으로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가 없었고, 내봤자 최소 3~4년 전에 논문으로 나온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원하는 연구는 이미 연구의 연구의 연구까지 끝나있어 권위있는 학술지에 논문 몇 편은 쓰여 있었다. 3년만 빨리 태어날 걸 후회했지만 3년 뒤에 새롭게 나올 연구에 대해서는 어렵다는 핑계로 미뤘다. 자연스럽게 교수가 제안해준 아이디어로 연구를 진행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교수의 눈과 손이 되어 있었다. 나는 교수의 덕질을 대신 해준 격이었다. 반대로 내가 주제부터 결과까지 내야하는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재미를 느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자주 새웠다.


결국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주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이 시킨 일은 결코 내 연구가 될 수 없다. 회사에 들어와서 하는 업무도 마찬가지이다. 프로그래밍 업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원래 있던 프로젝트를 유지보수 하는 것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원래 있던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고 느낀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그에 반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는 것은 기반부터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그래도 내 손으로 하나하나 만든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쉬는 날에도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책에서 "연구라는 건 대게 실패하기 마련이라 일 년에 한두 번 기대하던 결과가 나오게 되지. 그때만큼이라도 즐거워하며 그 힘으로 다음 일 년을 버틸 수 있으면 과학자로 살 수 있는 거야" 라는 부분이 나온다. 실패하기 위해 연구와 업무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럼에도 실패할까봐 못한다고 했다. 시작한 일이 실패로 흘러가자 두려워서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며 잘 되어가고 있다고 보고한 적이 종종 있다. 하지만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내 실패를 기록하는 것이 좋은 연구임을 배웠다. 실수로 탄생한 과학자들의 업적처럼 내 실패도 기록해놓으면 언젠가는 왜 실패했는지 깨닫고 더 좋은 연구가 탄생할 것이라 믿게 되었다. 세상을 이롭게 만들거나 발명을 한다거나 하는 연구도 좋은 연구이지만, 작가가 말했듯이 가장 좋은 연구는 이미 논문을 완성한 연구이다. 마음먹고 생각한 것에 대해 시작해서 끝을 냈다는 것이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꼭 필요한 연구같다. 책의 제목처럼 내 연구가 아주 조그맣고 쓸모 없어 보여도 누군가는 내 논문을 보면서 다른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다.


내 직함은 연구원이다. 입사한지 이제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제대로 된 연구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당장 닥친 일에만 급급하고 내가 뭘 해야할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책을 읽고 진정한 연구자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작가도 전공과 전혀 상관 없는 글쓰기와 코딩을 배우면서 본인의 연구에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화학 연구실에 있을 때도 생명 지식과 화학 지식을 교환하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내 전공에 얽매어서 좁은 우물만 파고 살았던 것 같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지식을 습득하며 어떤 점을 내 연구와 연관시킬지 계속 고민해봐야겠다. 사실 요 근래 업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내가 정말 이 일을 해도 되는 건지.. 다른 사람에 대해 내가 너무 부족한 건 아닌지.. 회사에 내가 과연 쓸모가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책을 읽고 그래도 다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쓸모 없는 것들이 정말 세상을 구할지도 모르니까.. 

 



평점 : 4.2

생명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기대했는데, 유전과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주라서 기대한 부분은 채워지지 못했지만 생각도 못한 이야기에서 많은 감동을 얻었다. 

한줄평 : 연구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길잡이와 위로